
왜 VEIR 초전도 케이블이 데이터센터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가
AI 시대의 전력 병목, 물리적 한계를 넘는 기술이 등장했다
2025년 11월, 서울의 한 데이터센터 회의실에서 전력팀이 마주한 숫자는 충격적이었습니다.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945TWh로 2배 가까이 증가한다는 전망.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부지도, 송전 인프라도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이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VEIR라는 미국 스타트업이 제시한 초전도 케이블 기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선 자체를 바꾸자”는 발상의 전환입니다.
초전도, 그 놀라운 원리
초전도란 특정 임계온도 이하에서 전기저항이 거의 0에 가까워지는 현상입니다. 구리 케이블로 전기를 보내면 저항 때문에 열이 발생하고 에너지가 손실됩니다. 하지만 초전도 케이블은 이 손실을 극적으로 줄입니다.
VEIR의 주장은 대담합니다. 같은 공간에 5~10배의 송전 용량, 저항 손실은 90% 감소. 2025년 1월 7,500만 달러 투자를 유치했고, 11월에는 3MW급 전력 전달 데모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상용화를 향한 파일럿 단계를 준비 중입니다.
왜 데이터센터에 ‘혁명’인가
이 기술이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1. 폭발하는 전력 수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4년 460TWh였던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30년 945TWh로 연평균 15% 급증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특히 AI 워크로드는 기존 서버보다 훨씬 높은 전력 밀도를 요구합니다. 더 많은 전기를, 더 좁은 공간에 집중시켜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2. 도심 속 땅과 권리의 한계
서울, 뉴욕,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 새로운 송전선로를 깔기 위한 부지 확보는 갈수록 어렵습니다. 권원 협상만 수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전도 케이블은 기존 관로나 케이블 트레이를 그대로 쓰면서 용량만 늘릴 수 있습니다.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기술로 돌파하는 셈입니다.
3. 에너지 효율의 비약적 개선
송전 손실이 줄면 데이터센터의 PUE(Power Usage Effectiveness, 전력 사용 효율)도 개선됩니다. 구리 케이블에서 발생하던 열이 사라지면서 냉각 부담도 줄어듭니다. 학술 연구에 따르면 100MW급 데이터센터에 초전도 배전을 적용할 경우 유의미한 에너지 절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실제 적용은 어떻게 이뤄질까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도심 코로케이션 센터 증설: 기존 지하 관로의 크기는 그대로인데 송전 용량만 5~10배 늘어납니다. 새로운 권원 협상 없이도 전력 증설이 가능합니다.
AI 데이터센터 전력 인입: 변전소에서 캠퍼스까지 수 km 구간을 저손실 초전도 링크로 연결합니다. VEIR는 3MW 실증을 넘어 수십 MW급 파일럿을 준비 중입니다.
재생에너지 연계: 도심 외곽의 태양광·풍력 발전소와 데이터센터를 장거리 저손실로 연결하는 미래 청사진도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로서 짚어야 할 현실적 과제가 있습니다.
냉각 시스템의 딜레마: 초전도를 유지하려면 극저온 냉각이 필수입니다. 냉각에 드는 전력과 유지비용을 포함한 전체 시스템의 효율(COP)이 핵심인데, 현장 실증 데이터는 아직 제한적입니다. “손실 90% 감소”가 곧 “전체 효율 90%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신뢰성과 안전 규격: 케이블 손상이나 냉매(헬륨, 질소) 누설 시 대응 방안, 화재 및 단락 보호 설계, 국가별 전기설비 규정 적합성 등 검증해야 할 항목이 산적해 있습니다.
스케일업의 시간: 3MW 데모에서 수십 MW 파일럿으로, 다시 100MW급 상용 시스템으로 확장하기까지는 인허가, 시공, 납기의 벽이 있습니다. 2~3년은 각오해야 합니다.
한국에서의 적용 가능성
특히 대한민국 상황에서 이 기술은 매력적입니다.
수도권 전력 인프라는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 서울·경기 도심에서 새 송전선로 권원 확보는 가장 큰 리스크 요인입니다. 같은 관로에서 용량만 늘리는 초전도 방식은 입지 심사에서 강력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또한 RE100과 탄소회계 측면에서도 송전 손실 감소는 스코프2 간접배출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케이블, 크라이오(냉각) 시스템, 보호계전 등의 국산화 생태계 구축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실무자를 위한 조언
만약 당신이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를 책임지고 있다면, 지금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 전력 시나리오 업데이트: 2027~2030년 AI 랙 밀도와 총 부하를 IEA 성장률 기준으로 재산정하세요.
- TCO 비교표 작성: 구리/알루미늄, DC 버스, 초전도 케이블의 m당 손실, 열부하, 관로 점유율, 시공 난이도를 정량 비교하세요.
- 냉각 전력 분리 계산: 송전 손실 절감과 냉각 전력 소모를 분리해 실제 PUE 개선치를 추산하세요.
- 파일럿 범위 설정: 변전소에서 주배전반까지 단일 피더 10~30MW를 초전도로 대체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하세요.
- 리스크 대응 매뉴얼: 냉각 장애 시 바이패스 회로, 비상 차단, 압력 해소 절차를 미리 문서화하세요.
결론: 약속을 현장 숫자로 증명할 시간
수요는 폭증하고 공간은 한정됐습니다. 초전도 케이블은 이 딜레마를 정면 돌파하는 기술적 해법입니다. “공간은 그대로, 용량은 5~10배”라는 약속은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로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냉각 효율, 시스템 신뢰성, 표준 규격이라는 세 가지 관문입니다. 이것들을 통과할 때 비로소 초전도는 실험실에서 현장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VEIR의 3MW 데모는 시작일 뿐입니다. 이제 수십 MW 파일럿을 2026~2027년에 착수하고, 2030년까지 상용화 트랙을 완주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TCO, COP, 권원 확보라는 세 가지 핵심 변수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전력 인프라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습니다. 선을 바꾸면 미래가 바뀝니다. 그 약속이 현실이 되는지, 우리 모두가 지켜볼 차례입니다.